
꼬마야
그림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마트에 들렸다. 평소 밥을 해 먹지 않는 채아를 위해 장을 보곤 했다. 그림은 내심 미안해하면서도 은근 자신이 만든 요리를 좋아해 주는 채아의 표정을 떠올렸다.
채아와는 이제 가족과도 다름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잔소리가 듣기 좋았고 명목상 다른 이유가 있었지만 함께 해서 나쁠 이유가 없는 사이였다.
종량제 봉투에 갖은 재료를 담아 마트를 벗어났다. 해가 짧아져 저녁만 되어도 어두워졌다. 7시를 갓 넘긴 시계를 바라보다 발걸음을 옮겼다.
빵빵- 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낯익은 주황 택시가 [예약]을 깜빡이며 비상등을 켰다. 보조석의 창문이 열리면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꼬마야. 어디에 가고 있니?”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말투. 하지만 그림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누나 집 말고 어디에 가겠어.”
“그럼 기꺼이 태워줘야지.”
불이라도 켜주지. 그림은 어둠 속에서 자신에게 팔랑팔랑 손짓하는 채아의 손을 보고 택시의 뒷좌석 문을 열었다.
집으로 향하는 내내 아무 말도 없는 채아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원래도 대화는 잘 하지 않긴 했지만 유독 이상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졸음운전 하는 것은 아니겠지, 하면서도 안정감 있게 핸들을 잡고 있는 손에 안심이 되었다.
“꼬마야.”
아까부터 꼬마야. 꼬마야. 하는 것이 영 찝찝하다. 보고도 몰라? 어린이의 몸이었으면 모를까 지금은 성인의 몸인데 말이야. 전에도 애가 본다면서 애 취급 하긴 했었지. 그림은 표정을 구겼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꼬마야.”
“어.”
“꼬마야. 배가 고프지 않니?”
“그래서 저녁거리 사서 왔잖아. 냉장고 좀 채워놓지.”
그림은 툴툴거리며 종량제 봉투를 뒤적였다. 조금만 뒤져야지. 부스럭거린다고 뭐라 할게 분명하니까. 그림은 손의 감각으로 뭐 하나 깨지지는 않았는지 새어 나오지 않았는지 만져보았다.
“아.”
그림의 손에 축축하게 무언가 묻어나온다. 뭐가 샌 거지. 그런 걸 샀었나.
“… 나는 한번 맡은 피 냄새를 절대 잊지 않지.”
순간 몸이 뻣뻣하게 굳어왔다. 알고 있었다. 이 목소리. 들어본 적 있는 이 목소리.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림을 바라보았다.
“낯선 사람을 따라가면 안된다는 걸. 누나에게 배우지 못했나 보구나.”
숨이 턱 막혀 오는 찰나에 채아의 얼굴이 떠올랐다. 방금 그 말. 설마 아니겠지.
“꼬마야. 배가 고프지 않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