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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No Way Out

아무리 애를 써도 숨겨지지 않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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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아의 눈에는 이상한 게 보였다. 그러니까, 죽었으면서도 산 것들의 세상에 남아 경계가 모호하고 인간과는 확연히 다른 무언가. 소위 말해 귀신같은 것들. 한채아는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제 눈앞에 선 것이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읽기보다 귀신인지 아닌지를 먼저 고민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렇게 다다른 나이가 열여덟이었다. 평범한 삶을 위해 아등바등 노력해왔던 한채아는 이제 단 3초면 귀신과 사람을 구별할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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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아침이었다. 여전히 채아의 눈에는 사람 아닌 것들이 보였고, 귀신 하나가 보이면서 왜 저를 무시 하냐며 심술을 내는 통에 무릎에 큼지막한 밴드를 하나 붙였고, 무리지어 이야기하는 애들 틈바구니에 끼지 못해 어색한 인사 한 마디와 함께 자리에 앉아 애꿎은 폰 액정을 두들겼다.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 패턴에 목구멍 뒤로 넘기는 침이 쌉싸래하였다. 어차피 곧 조회가 시작할테니까, 그리 생각하며 위안삼던 차에 타이밍 좋게 교실 앞 문이 열렸다. 늘 그랬듯 출석부를 한 쪽 팔에 안고 들어서는 담임과, 그 뒤를 따라붙는? ...그 뒤를 따라붙는 사람 아닌 존재. 한채아의 손에서 핸드폰이 미끄러졌다. 액정 위 붙인 필름에 기다란 금이 갔다. 반 아이들의 모든 시선이 한채아에게 쏠리는데도 한채아는 그저 가만히 굳어 두 눈만 깜박대었다. 그 귀신이 꼴에 명찰까지 박힌 학교 교복입고 있어서. 더하여 이어지는 담임의 말에 채아는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낀다.

“우리 반에 전학생이 왔는데, 채아는 아침부터 시위하니? 자, 얼른 핸드폰 주워서 내고. 우리 윤수는 자기소개 해볼까?”

한채아는 부끄러움에 달아오른 얼굴로 황급히 고개 숙여 휴대폰을 주웠고, 전학생은 여유로운 낯빛으로 웃어 보이며 지기소개를 했다.

“안녕, 내 이름은 박윤수고, 잘 부탁해.”

형식적이기 그지없는 짧은 인사말에도 내뱉는 상판이 퍽 잘난 탓에 돌아오는 반응은 컸다. 그런데도 박윤수 걔는 별 다를 반응 없이 눈매 나붓이 접어 웃을 뿐이었고, 핸드폰 손에 쥔 채로 고개 들어올리던 한채아는 걔랑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채아의 맘 속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박윤수 쟤는 인간 아니고, 귀신 엇비슷한 무언가가 맞다고. 차마 내뱉지 못한 욕을 속으로 짓씹었다. 박윤수의, 티 한 점 없는 새하얀 피부와 대조를 이루는 새까만 눈동자에는 아무것도 비추어지지가 않았다. 마치 끝 모를 심연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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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채아 인생 최대의 위기였다. 박윤수는 절대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귀신도 아니다. 그러니까, 반 쯤 죽은(아마도)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보이는 이상한 무언가. 그리고 그 문제의 박윤수가 제 옆자리에 앉았다는 것. 그 사실이 미치도록 신경 쓰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저 박윤수라는 알 수 없는 존재의 모든 것이 신경쓰였다. 선생님은 앞에서 열심히 떠드는데 한채아는 도무지 집중을 못했다. 의미없이 샤프 끝을 달칵거린다. 글씨 쓰지도 못 할 정도로 나온 샤프심은 순식간에 부러져 하필이면 얼굴 향해 튀어올랐다. 아, 작은 소리 내며 한채아가 제 얼굴 감싸려던 찰나다. 박윤수가 더 빨랐다. 채아의 손보다 한 마디는 더 크고, 새하얀 손이 한채아 뺨에 닿았다. 한채아 눈이 동그래졌다. 새까만 눈동자 가득 박윤수 놀란 낯이 맺힌다.

“…괜찮나 해서. 안 아파?”

나지막한 목소리가 채아의 귓가를 간질인다. 박윤수도 충동적으로 손을 뻗었던 건지 어색한 낯으로 눈치를 살피다 손 떼어냈다. 느릿이 제자리 찾아가던 박윤수 손이 허공에서 멈춘다. 여전히 놀란 듯 눈 동그랗게 뜬 채 박윤수 두 눈 빤히 바라보는 한채아가 그 손 덥석 붙잡아서. 박윤수 표정 묘해지는데도 한채아는 한채아 나름대로 혼란스러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박윤수는 분명히 사람이 아닌데. 꼭 사람 손마냥 따뜻하고 보송하고 부드러웠다. 귀신 특유의 기분 나쁘게 축축하고 습하고 음울하고 찬 기운이라고는 없었다. 잠깐의 정적 이후, 황급히 손 떼어낸 한채아가 개미만한 목소리로 미안하다 웅얼댄다. 박윤수는 여상한 낯으로 웃었다.

“채아야. 너 피나는데.”

“…보건실 갈 거야.”

“데려다 줄까?”

“길도 모르면서.”

“…아.”

짧은 대화를 끝으로 채아의 몸이 완전히 박윤수 반대편으로 틀어졌고, 박윤수는 그 모습 가만히 지켜보았다. 여전히 박윤수의 눈에는 한채아가 비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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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울리기 무섭게 채아는 교실의 밖으로 향했다. 속이 미칠 듯 울렁였다. 머릿속이 박윤수, 걔 하나 때문에 엉망이다. 벽에 기대어 숨을 고른다. 대체 무엇 때문에 자신은 박윤수에게 이토록 동요하고 있는지. 지금껏 굳게 믿어왔던 것이 죄다 허상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불안함. 그것이 가장 그럴 듯한 답이었다. 한채아는 구태여 더 깊이 생각하기를 멈추었다. 힘주어 그러쥔 주먹에 손바닥이 축축하다. 습관적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다 따끔함에 인상을 구겼다.

“…보건실 가야겠네.”

중얼대며 옮겨지는 발걸음이 느릿하다. 원래도 삶이 평탄했던 적이야 없다지만, 오늘은 유난히 지독하다는 심심한 감상과 함께 계단을 디딘다. 그 순간, 채아는 소름끼치도록 익숙한 감각을 느꼈다. 축축하고, 음울하고, 습하고, 산 사람의 것이 아닌. 황급히 고개 돌렸으나 이미 등이 떠밀어진 후였다. 채아의 두 눈에 그것이 선명히 박힌다. 짧은 머리의 어린 여자애. 두 눈동자에 무엇도 비추어지지 않는 죽은 꼬마애. 말 한 마디가 한채아에게만 들려왔다. 나 알아 봤으면서 왜 아닌 척 해? 너도 나처럼 되면 날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여느 때와 다를 것 없긴 개뿔. 최악이다. 좆같아. 씨발. 기껏해야 2초 채 안 될 시간에 온갖 설움이 한채아를 덮친다. 두 눈 꾹 감는다. 새까만 눈동자가 완전히 가리어지고,

다시 드러났을 때에는 샛노란 눈동자를 마주한다. 눈물 맺힌 한채아 얼굴 선연히 투영하는 박윤수의 노란색 눈동자. 그러고 보니 얼얼한 곳 하나 없었다. 한채아의 등 뒤를 받치고 선, 한채아보다 한 마디 정도 큰 손을 그제야 깨닫는다.

“너 뭐야.”

뻗은 손은 어느새 박윤수 옷깃 세게 쥔 채였다. 울음기 어린 목소리로 대뜸 그리 물었다. 한채아가 수십 수백 번 스스로 해결해보고자 했던 것. 박윤수는 무엇인가?

한채아는, 정말이지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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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수는, 정말이지 알 수가 없었다.

한채아는 교실에 들어온 순간부터 눈에 띄었다. 절 보자바자 폰을 떨어뜨리고 놀란 눈으로 자길 보면서도 절대 눈을 피하지 않았고 가벼운 인사에도 어깰 움찔 떠는 모습은 꼭 자길 싫어하는 것 같았는데 대뜸 뺨 붙잡자 내치기는커녕 도리어 제 손을 마주 잡아오는 특이한 인간. 금세 조그만 손을 옹송그리고 황급히 눈을 피하는 건 꼭 절 좋아하는 것도 같았고 그럼에도 제게서 도망치고. 평범한 인간에겐 보일 리 없는 것들이 보이는 것처럼 굴고 결국 그것들 때문에 위험에 처했을 때, 그때마저 시선은 올곧이 빛을 내어서. 하여 쓸데없이 간섭하게 만들고 결국 제 민낯마저 드러내게 하는.

“…너야말로 뭐야.”

옷 아래 느껴지는 살의 온도는 기껏해야 삼십육도 즈음 되었을 것이 분명한데 손 전체가 불에 데인 듯 화끈거렸다. 눈매 맺힌 눈물도 허튼 짓 때문에 눈 아래 달고 있는 상처도, 죄다 짜증날 정도로 시선을 앗았다. 이 생경한 것은 한채아의 유난함 때문인가? 우스울 정도로 명확한 답을 두고 엉뚱한 답을 구한다.

무엇이 박윤수를 꼼짝도 못 하고 멱살 내어주게 만들었는지. 귀찮은 놈을 귀찮게 구해 더 귀찮은 일을 만드는지.

박윤수는 직감하고 한채아는 아직 눈치 채지 못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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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 뭔데. 재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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